[ 악곡분석 - 나 주를 따르리 ]
[ 개요 ]
작곡 : Stewart Landon
빠르기 : Gently (♩=80)
악보는 기음출판에서 나온 아가페찬양 6 (이민영,최명환 편) 을 사용했다.
[ 분석 ]
Gently 라는 말과 함께 분당 80 박자를 진행하라는 속도가 지시돼 있다. Gently 는 ‘상냥하게, 온화하게, 친절히, 조용히, 천천히’ 등의 의미를 지닌 사전적 정의를 연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말하자면, 주님을 따르겠다고 할 때 전쟁터에서 ‘우리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라고 결전에 앞서 각오를 다지는 구호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조용한 밀실에서 ‘사랑하는 주님, 어디를 가든지 놓지 않을래요’라고 사랑 고백을 하는 연인의 감정으로 노래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의 일상 생활 가운데서 언제나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을 소망하며 살겠노라는 담담한 신앙고백을 드리는 마음으로 찬양해야 한다. 그래서 곡 전체적으로 템포의 변화는 없는데, 극심한 다이나믹의 변화도 자제하는 것이 좋다. 또, 주관적인 것이지만 멜로디와 리듬 역시 무난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끝까지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불러야 한다.
곡은 전체적으로 [A] - [B] - [A] - [C] 의 형태로 [B] 는 [A]의 조성인 Ab 의 나란한 조인 f (F minor) 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곡 전체적으로는 다카포 아리아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C] 는 곡 마지막에 후주처럼 추가돼 있다.
4/4 박자의 곡이며 네 마디의 전주가 나오는데 mp 로 시작하고 있다. 전주의 처음부분에 있는 두 마디의 선율은 곡 전체적으로 네 번 나타나는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연주해야 한다. 이 부분을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주제’는 처음 나타난 후에 옥타브만 낮아져서 동일하게 반복하고 있다.
위에 있는 악보의 10개의 음표 중에 두 번째와 여섯 번째 음을 화음 밖의 음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음은 도미솔 즉, I 도 화음이다. 두 번째 음을 제외하고 처음 네 음의 화음을 보면 I46-x-I-I46-I 이며, 여섯 번째 음을 제외하고 다음 네 음은 베이스에 으뜸음이 있기 때문에 모두 I 화음이다. 앞뒤 선율에서 차이점은 앞에 있는 sop. 선율이 옥타브를 낮춰 alto 선율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석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sop. 선율을 계이름으로 하면 미파솔미솔 인데 처음의 ‘미’와 마지막의 ‘솔’을 선으로 잇고, 가운데 있는 ‘솔’과 ‘미’를 선으로 이으면 십자가 모양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모양으로 세 파트가 모두 동일하게 그리고 있다. 즉, word painting을 하고 있는 것이다(몬테베르디 이후 음악적인 형태로 가사를 표현하는 word painting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경우도 바로 십자가를 표현하는 전통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첫 음표와 두 번째 음표 사이에 경과음을 두어서 한쪽이 길게 보이도록 배치한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주제 부분을 이해하면, 앞에 있는 5개 음의 음형은 주님의 길을 나타내고 뒤에 있는 반복은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길을 나타내고 있다. 앞서 가신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제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는 것이다. 이에 제자들도 또 제자된 나도 예수님의 길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겠다는 고백을 찬양으로 드리는 것이다. 또, 제자들의 걸음과 항상 동행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엿보인다. 그래서 이 부분을 ‘주제’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곡 전체적으로 messa di voce 를 신경 써서 연주해야 한다. 그리고 소절의 끝 부분은 거의 사분음표 두개(♩♩)로 표현하고 있다. ‘거하리’, ‘받으리’, ‘얻으리’, ‘놓으라’, ‘찾으리’ 등등 곡의 마지막 까지 나타나고 있는데 이 부분의 표현을 좀 더 신경 써서 적당한 rubato 를 섞어 연주한다면 느낌의 표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A ]
나 주님 따라가며 그 안에 거하리
나 주님 따라가면 큰 은총 받으리
네 맘 다해 주님 따르면 소망을 얻으리
자비론 주 보좌 앞에 네 짐을 놓으라
‘네 맘 다해 주님 따르면’ 이라고 하는 부분에 주제가 사용되고 있는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곳이다. 연주할 때는 앞 부분은 조금 더 힘이 있게, 그리고 뒷 부분은 마치 앞 선율에 대한 echo 와 같이 약간 소리를 줄여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소망을 얻으리’ 라고 시작하면서는 전체 합창이 등장하지만 갑자기 툭 차고 나오는 느낌 보다 작은 소리로 부드럽게 시작하여 ‘소망을 얻으리’ 라는 부분만으로 messa di voce 가 되도록 연주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네 짐을 놓으라’는 부분에서도 주제 선율과 마찬가지로 word painting 을 찾아볼 수 있다. 소프라노 선율을 보면 A-B-D-G-B 로 진행하고 있는데 A 음과 네 번째의 B 음에 선을 잇고, D 음과 G 음을 선을 그으면 십자가 모양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너의 짐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으라’라고 이해할 수 있다. ‘자비로운 주의 보좌’는 바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주님의 십자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번역곡의 한계로 인해 ‘자비론 주 보좌’ 라는 말이 잘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화면에 자막을 보여주는 경우가 아니면 ♩(‘자’) 부분을 둘로 나눠서 ♪♪(‘자비’)로 하고 ‘자비 로 운’ 으로 부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큰 은총 받으리’ 라고 하는 부분에서 ‘큰’⟶‘은’ 사이에 장3도의 변화가 있다. 보통 약박에서 강박으로 진행하면서 3음이 변하면 정확하게 연주하기 어려워 음정이 틀리거나 소리가 작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 부분은 별도로 표시하고 익숙하게 될 때까지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 B ]
나 주를 따르며 주의 뜻 찾으리
죄 많은 우리 도우신 주님을 따르리
강하신 주의 권능에 네 생활 맡기면
시험이 닥칠 때마다 큰 도움 얻으리
f 단조로 바뀌어 여성 파트만의 합창이 등장한다. 마치 주님의 십자가 앞에 모든 짐을 내려놓은 성도들 앞에서 천사들이 부르는 합창소리와도 같다.
단조에서 나타나는 화음은 감정을 온전히 실어서 노래하기에는 완전한 협화음이 아닌 까닭에 주로 제 삼자의 입장에서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거나 상황을 설명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 여기서도 천사들이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성도에게 그 길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시험이 닥칠 때마다’ 라는 부분에서 2,4 화음과 5,6 화음이 반복되어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시험’이라고 하는 부분을 tone painting 해서 반복 사용하고 있다(tone painting 은 word painting 처럼 특정 음이나 화음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시험이라는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 불협화음이라 할 수 있는 7화음의 자리바꿈 화음을 연속해서 사용했다. word painting, tone painting, text painting 등 용어가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시험’이 한 번만 오는 것이 아니고 ‘반복하여 닥쳐와도’ 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또 이를 간과하지 말고 강조하라는 의미에서 엑센트 표시가 돼 있다.
‘큰 도움 얻으리’ 라고 하는 부분에서 mp 가 돼 있는데, 작게 소리를 내라는 의미로 해석하기 보다는 평온하게, 부드럽게 부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Quietly 라고 하는 지시어가 붙어 있는데, 이는 시험이 거듭 닥쳐와도 주님을 따르는 성도는 큰 도움을 얻고 평안함, 고요함을 얻는다는 의미이다. 그저 작고 조용히 내는 것 보다는 오히려 확신 있는 소리로 tenuto 하여 가사를 표현해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 A ]
나 주님 따라가며 주 이름 찬양해
나 주님 따라가며 주 말씀 따르리
겸손하게 주를 모시면 큰 축복 얻으리
주님을 믿는 성도는 큰 축복 받겠네
전통적으로 다카포 아리아의 연주에서 다시 반복되는 부분은 연주자의 자유스러운 해석에 의해서 변형 후 연주했다. 이런 부분이 발전된 형태가 cadenza 인데 곡의 종지 이전에 연주자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기량을 나타내기 위해 원 곡보다 더 긴 cadenza를 붙여 연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합창곡의 경우이므로 자유롭게 곡을 변형하여 부르기는 쉽지 않다. 편곡자가 미리 곡을 편곡하여 나눠준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선율을 바꿔 부르는 것은 거의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부분은 약간씩 바꿔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곡의 설명 첫 부분에서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언급했는데, 조용하고도 잔잔하게 또 담담하게 연주하고자 특별한 극적인 요소 없이 같은 선율을 반복하면 지루하게 들릴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가사가 중요하다고 해도 포장을 허술하게 하면 그 느낌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에서 legato 로 불러왔다면 여기서는 약간 강조하여 marcato 의 느낌을 넣어 부른다든가, 앞에서 약간 어둡고 잔잔한 분위기로 불렀다면 여기서는 좀 더 힘 있게, 약간 템포가 빨라지게 부른다든가 해서 변화를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남성과 여성이 한 소절씩 멜로디를 unison 으로 부른다든가, 전체가 unison 으로 멜로디를 부른다든가 하여 변화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곡의 key 가 되는 선율 부분이 있다고 언급했는데 여기서는 ‘겸손하게 주를 모시면’ 부분이다. 앞에서 여성 3중창이 등장하여 연주했다면 여기서는 남성 3중창 또는 남성 2중창으로 연주한다든지, 또는 멜로디는 남성이 하고 여성이 나머지 2중창을 연주한다든지, 또는 앞은 남성이 뒤는 여성이 부르는 식으로 변형이 가능할 것이다. 사실 곡 전체를 보아도 음이 가장 높은 부분은 이 부분이다. 현실적으로 크게 소리를 낼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지휘자라면 곡의 다양성 부분에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부분이다.
‘나 주를 따르리’라고 하는 곡의 제목을 상기해 보자. 그 가사의 끝은 ‘큰 축복 받겠네’ 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부분이 있다면 주님을 믿는 성도에게 주어진 축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word painting을 보면 가사에서 말하는 ‘큰 축복’이란 바로 십자가의 축복임을 알 수 있다. 십자가 고난을 의미하는 것이다. '축복'이라는 단어에 집중해서 온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며 아주 밝은 소리로 '큰 축복 받겠네'라고 부르게 되면 성도들로 하여금 가사의 의미를 오해하게 할 수도 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행복과 환희가 가득 찬 꽃길이 아니라 고난과 환난이 가득한 십자가의 길이다. ‘내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그 말은 주님을 위한 고난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겠다는 각오를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남겨두신 고난, 즉 교회 운동을 위한 희생과 봉사, 헌신의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뒤 이어 나오는 간주와 마지막 고백은 어떤 느낌으로 연주되어야 할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 C ]
나 주를 따르리
곡을 바로 끝내지 않고 다짐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후주가 나타난다. 먼저 짧은 간주에서 주제 선율을 보여준다. 바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제자로서의 삶임을 다시 보여준다.
간주 후에 고백이 나온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나는 따르겠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삶은 십자가의 희생을 감수하는 삶이다.
마지막에 연달아 두 개의 fermata 가 나타나 있다. 이 부분을 기계적으로 2~3배 늘여서 연주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rubato 하여 연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 부분의 가사는 전체를 tenuto 하여 강조해 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여기서의 mp 는 소리를 줄이라는 것 보다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의미 즉 혼잣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mp 이지만 약간 힘 있게 연주하는 것이 좋다. 또 음이 낮아 가사가 잘 들리지 않을 수 있으므로, 화음은 악기(반주)가 내도록 하고 성악파트는 전체가 unison 으로 멜로디를 불러서 그 의미를 강조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이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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